횡설수설

카테고리 없음 | 2014. 4. 10. 05:30
Posted by hyun현

트랜스젠더 메모리얼 떄 뭔가 얘기하고 싶다에, 지금 갑갑한 맘을 풀고 싶다는 마음에, 그냥 되는대로 막 쓰고 싶다는 맘에 써내려갔더니.. 어둡고 용두사미에 포인트가 없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한 쪽으로 극단적으로 쓴거 같아 이것도 뭐 본심의 일부이긴 하니까.. ㅠ 하지만 이런 게 싸지른 글이 되는 거 아닌가 ㅠ 니 제목은 횡설수설이다.

나중에 고쳐 써야겠다.

아.. 알겠다.. 이거 역시 내 내공의 부족의 소산이군. 욱하는 맘에 써내려 갔다가 아차 하면서 좋은 말로 마무리 하려고 노력한 흐름..이다 ㅠㅠㅠㅠ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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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이 공간에서 트랜스젠더로서의 나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것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를 알았던 떄든 몰랐던 때든, 내가 트랜스젠더임을 인식하는 그 어느 즈음부터 나 스스로가 나의 인식과 나의 몸을 상대로 싸웁니다. 부정과 긍정을 반복하며. 그것은 수술을 하였든 안 하였든, 신분증의 성별이 바뀌었든 아니었든, 강약의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과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평생 함께합니다. 수술을 하여도, 생물학적인 남성과는 다른 몸과 다른 과거가 있으며, 이 사실은 어찌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내 존재가 나로부터 부정당하였다는 사실에 좌절하지 않는 것이 트랜스젠더로서 나의 싸움입니다.

남성으로 몸이 변화하고 남성으로 사회생활을 한 지 7년 가까이 됩니다. 이제는 다양한 성별 스펙트럼에서 100%남성과 100%여성만이 존재한다는 '상식'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상식'이라는 것을 비웃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지금에도, 마음 한 켠에는 분명 다수의 남성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하였다는 것에 대한 좌절이 존재합니다. 물론 다수의 남성이 가지지 못한 몸과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온전히 즐거움으로 바꾸어질 날이 평생동안 올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내 존재 자체와 갈등해야만 하는 길을 걷는 다는 것이 트랜스젠더로서 나의 싸움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아닌 주변 역시 싸움터가 됩니다. 주변의 관계들. 태어나면서 아무 인간과 접촉하지 않고 아무와도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 하나하나의 관계들을 다시 써내려가야 합니다. 내 성별을, 내 존재를 주변의 사람에게 알리는 작업을 해나가거나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아무리 전해도 망각하거나, 부정하거나, 혹은 폭언과 폭력으로 억누르고 지우려는 사람들과도 마주쳐야 합니다. 남성으로서 7년, 성별정정하고 1년, 아직까지도 나를 알리는=보여주는 작업은 계속됩니다. 게다가 언제 끝날지 모르게, 한 사람 한 사람 거쳐가야 하는 데 지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그리고 내가 여자로 태어났다는 여자로 살았다는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어지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사람들과 관계를 끊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 트랜스젠더로서 나의 싸움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와 제도가 트랜스젠더를 부정하는 공간에서 저는 살고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라고 사형을 당하는 것도 감시당하는 곳도 아닙니다. 물론 성별정정을 담보로 생식능력을 강탈당해야 하고 때로는 원치않는 수술을 해야 하기도 하지요. 그 외에는 뭐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대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반대로 모든 것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오고가는 인사말에서부터, 학교와 직장에서, 화장실과 병원에서, 편의점과 술집에서, 때로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해서는 않되는 사람이 됩니다. 남성으로 패싱이 되어도 신분증은 꺼내지 못하고, 신분증을 당당히 꺼낼 수 있게 된다고 해도 병원을 어디나 다 걱정없이 갈 수는 없습니다. 성별정정이 되었다고 해도 보험은 오히려 들기 힘들어지고, 초본을 떼면서 걱정을 해야 하고, 군대이야기에 긴장해야 하고, 소변기만 있는 술집에 당황해야 하며, 직장에 동창생이라도 있으면 노심초사해야 합니다. 그런 환경에서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것이 트랜스젠더로서 나의 싸움입니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은 발디디고 서 있을 땅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존재부정과 싸워야 하는 상대는 나 자신, 나와 관계 맺은 주변사람, 내가 속한 사회환경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엮여서 한 번에 쏟아져 내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트랜스젠더인 나는 살기 위해서 강해져야 합니다. 강해지고 싶습니다. 

마음이 강해지지 못하면, 스스로 삶을 끊을 수 밖에 없기도 합니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먼저 간 이들을 슬퍼하고, 그래도 거기까지 잘 살아주었다고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삶이 얼마나 트랜스젠더인 나를 옥죄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운의 총량은 같습니다. 삶은 불행만으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다. 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행과 불행은 필시 같은 비중입니다. 지금까지의 삶 안에서 불행을 더 많이 봤다면, 보지 못한 행은 그만큼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사회는 분명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경험상의 이야기 입니다. 앞서 나열한 좌절과 싸움과 함께 기쁨과 안락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살기를 바랍니다.

트랜스젠더는 누구나 칭찬받고 격려받아야 합니다. 지금 이 땅에 살아서 서 있기 때문에 대견한 것이고, 지금이 땅에 없다면 이 땅에 머물었더 그 순간까지 살아 있었기 떄문에 대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트랜스젠더 메모리얼 데이는, 먼저 간 사람에 대해서도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모두 다에게, 걸어 온 삶의 궤적들 하나 하나에 격려를 보내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2014/1/14

카테고리 없음 | 2014. 1. 14. 11:17
Posted by hyun현

직장을 그만두고 학위논문에 돌입하려고 한다. 일부 주변의 만류와, 좋은 직장을 버리고 안정을 버리는 데 대한 불안을 뒤로 하고 퇴직 준비를 하고 있다. 현실 도피를 하는 것인지, 현재를 충실히 살기 위한 것인지, 그것은 미래에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고 둘 중 무엇이었는가를 결정하는 것으로 나하기 나름일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왜 사는가. 10대 때 나를 괴롭히던 질문이 다른 색깔과 다른 느낌으로 다시 다가온다. 문득, 가까이에 형부부를 포함하여 주변에 아이를 가지거나 낳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씁쓸함과 부러움과 분노와 질투가 엄습하는 요즘이기에 이런 질문들이 다시 떠오른 것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내 유전자의 편린들을 남길 자손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주는 박탈감. 어디 서양의 어느 국가에서 태어났으면, 한국땅의 인식이 조금 더 나아간 미래에 태어났으면, 혹은 좀 더 평범한 남자나 여자로 태어났으면, 혹은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겪지 않을 상황이었고, 그래서 가지지 않을 박탈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선택 아닌 선택으로 내 손으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어찌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건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길을 왜 자꾸 버리는가. 왜 난 굳이 그렇게 하는가....

불현듯 깨쳐진 하나의 욕구가 강렬하게 스쳐지나갔다. - "남기고 싶다"  

죽기 전에 살았음을 남기고 싶다. 작은 지구 땅의 수백억명의 수백억년 속에 하나일지라도, 그래도 내가 살았음을 남기고 싶다. 자손을 남기지는 못한다면, 기억을 남기고 싶다.

세상을 뜬 전애인과 같이, 마지막 눈감을 때 나 역시 혼자 눈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한다. 자식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현실로 자각하는 요즘 종종 떠오르는 것이다. 죽음을 향한 짧은 이 시간동안 후회없이 살고 싶다.

그래서 현재를 사는 것이다. 과거에 얽메이지 않고, 미래에 불안해하지 않고, 지금 현재를 가지려는 것이다. 

 

 

 

수영 배우기 시작.

카테고리 없음 | 2013. 8. 6. 10:46
Posted by hyun현

수영 끊었습니다! 수영 배우고 있어요!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죠, 이제 수영장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진짜로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배우니까 새삼 느껴지더군요. 아! 이런 날도 오는구나!

평생 수영장은 못 들어가보고, 죽을 때 까지 수영은 배워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제 가슴 까고 가슴 펴고 당당하게 수영장에 입성합니다 ㅎㅎㅎ

또, 뭐가 있을까요? 수술하기 전, 트랜지션 전의 십대 때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것들로 변한 것들이요.

 

부모, 가족의 지지

카테고리 없음 | 2013. 7. 30. 19:21
Posted by hyun현

주말에 청소년 대상 티지 강의에 반갑게도 아이와 함께 아이의 부모님이 와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부모가 자녀가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알아보고 같이 의료적 조치와 수술들을 준비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로써 통산 네번째이다.

그만큼 아직 아주 소수, 드문 경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단 한 가족이라도 느는 것은 큰 희망이다. 가족의 심리적, 경제적 지지가 있을 때에 트랜스젠더 당사자는 정말 많은 짐을 나눠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강의를 찾아내고 나에게 연락이 닿는다는 것은 그만큼 부모가 적극적으로 모든 가능한 것들을 뒤졌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그래서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뿐만 아니라 한국 트랜스젠더의 인권 자체에 대한 향상을 바라고 있다는 점은, 나아가 앞으로 티지 운동에 커다란 힘이다. 특히 트랜지션, 법적 성별정정을 비롯하여 촘촘하게 기다리고 있는 많은 허들들을 거쳐야 할 때, 한국 사회에서는 유교적 뿌리 안에서 가족관계를 (서구나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중요한 잣대로 들이대는 편이기 때문에 부모의 지지가 있는 트랜스젠더가 있다는 사실은 정서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운동의 힘이 된다.

벌써 7여년 전 쯤 처음으로 트랜스젠더임을 고백하는 아이와 함께 그 부모님을 만났다. 그 때부터 트랜지션의 과정을 밟아오면서 이제는 신체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주변환경으로부터도,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평온한 안정과 행복을 누리고 있는 아이와 그 부모님들이다. 그 부모님을 소개시켜드렸다. 처음으로 보았던 그 전 부모님의 아이와 이 아이의 처음 모습이 참 비슷했다.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얼굴도 들지 못하고 구부정하게 쪼그라들어 있는 모습. 아마 나도 한 때 그 모습과 비슷했었으리라.

두 분 부모님들이 앉아서 함께 고통과 고민을 나누고 앞서 거친 사람으로서 여러가지를 이야기 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뿌듯하고 힘이 차올랐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늘어나고, 또 그 안에서 함께 티지의 가족으로서 목소리를 내주실 분들이 늘어나는 것에 또 한 발자국 나아간 느낌이 든다.

10월 6일에 티지 가족들 워크샵을 KSCRC 조각보에서 준비 중이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부모 형제들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2011년 6월 17일 제17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처음으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제19차 유엔인권이사회 "인권,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패널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트랜스남성이자 트랜스젠더 인권활동가인 Justus Einsfeld의 연설이 간결하고도, 마음을 울리길래 이렇게 올려봅니다.

개인적으로 이 친구는 2011년도 3월 뉴질랜드 Outgames Conference에서 만났는데요, 전세계를 뛰어다니며 트랜스젠더 권익 운동을 위해 열심히인 활동가였습니다.:) (사실 핸섬한 것이 딱 식이 되어서, 잘생겼다는 이야기를 슬쩍 단번에 퇴짜 맞았답니다 ㅎㅎㅎ. 웃으면서 바로 남자친구 사진을 보여주더군요. 중후하게 멋진 느낌의 정신과 의사였어요. 이런 핸섬스런 커플같으니라고 ㅠㅠ 작년에 파트너랑 결혼 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 축하)

그 때 컨퍼런스에서는 아침 시작 때마다 실시간으로 결의안 채택에 찬성한 국가를 새로이 불러주었는데, 여러 국가의 활동가, 당사자 등이 모인 자리에서의 그 열기가 잊혀지지 않네요. 한 활동가가 한국 정부 관계자가 군형법 문제로 찬성하기를 주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어왔다고, 한국 국내에서 정부에 대한 항의와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전달했더랬죠. 그 때 국내 단체들에 내용 포워딩한 것 외에 다른 것을 못해서 나의 미약함에 슬퍼했지만.. 여튼 한국도 채택했어요 결국.:) 

원문과 번역문 올립니다. 번역은 자연스럽게 읽히게 의역했어요. 틀린 번역 지적해주세용. 특히 they fail us를 '그들이 우리를 실망하게 한다'로 해야 할지, '그들이 (우리에 대해) 실패했다'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네요.(게다가 번역해놓고 보니 원문의 감동이 전달이 잘 안되네요.. ㅠㅠ 번역은 제2의 창조 ..ㅜ)

 

 2012.3.8 제19차 유엔인권이사회 '인권,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패널 토론,

트랜스젠더 활동가  GAT*E 공동대표 Justus Einsfeld의 연설

 이 패널이 구성될 수 있도록 도와준 서아프리카와 다른 여러 나라들에 감사를 표합니다. 인권이사회에서 성별정체성이 아젠다로 설정된 것은 사상 처음이며, 마땅히 그러할 때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트랜스* 피플'은 성별정체성에 대한 많은 표현들에 대응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용어(placeholder)입니다. 트랜스* 피플은 어떤 지역에서는 히즈라, 펜키드, 카토이, 파아타마, 제니스, 마후, 딜바, 트라베스티, 트랜스섹슈얼 혹은 트랜스젠더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떠하든간에 우리들은 당신들의 모든 문화와 사회의 일부였었고, 또 언제나 그러할 것입니다.

이 세계의 많은 트랜스*피플은 폭력과 차별을 경험합니다. 트랜스* 피플은 거리와 가정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혹은 자신의 가족에게 폭행을 당하고, 강간당하고, 살해당합니다.

정부가 우리들이 우리들이기 때문에 박해하거나, 적절한 직업을 가질 기회가 부족하여 성노동이나 지하시장으로 유입될 수 밖에 없게 될 때에, 정부는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또한, 신분증서에 우리의 정체성이 반영되지 못하게 하거나, 반영되기 위한 요건으로 불임을 요구하는 것 역시 정부는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주며, 제 국가의 정부도 저에게 역시 그러했습니다. 독일의 헌법재판소가 이를(생식능력제거 요구) 부정하는 판단을 내렸으나, 아직까지 대부분의 국가가 여전히 이 요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회와 가족들이 우리를 거리로 내몰고, 그것이 종종 어린 시절에 이루어지게 됨으로써 우리의 교육받을 권리가 부인되고, 우리가 가질 수 있고 가져야 마땅한 일자리에서 내몰릴 때, 우리 사회와 가족들은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보건의료체계가 '그런 사람들은 치료하지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부러진 팔이나 총상을 치료하지 않은 채로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낼 때 보건의료체계는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또한 우리가 온전히 자신으로 있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에 대해 그것이 의료적으로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암시장에서 호르몬을 구입하고, 해로운 공업용 실리콘을 사용하거나 야매로 수술을 받게되는 것 역시 그러합니다.

인권매커니즘이 우리들을 그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할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을 때, 인권매커니즘은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트랜스*피플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 태어나 인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인권은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보호해야 할 인권이라는 것입니다.

 

 

원문

http://ilga.org/ilga/en/article/nr5t6qZ1Jy

19th Human Rights Council: panel discussion on “Human Rights, sexual orientation and gender identity”

Justus Eisfeld statement at the Human Rights Council

  in WORLD, 08/03/2012

Justus Eidsfeld delivered the following statement, on behalf of GAT*E at the panel discussion on sexual orientation and gender identity

Watch the video 01:55:49

Madame President
Madame High Commissioner
Distinguished Panelists

Thank you very much to South Africa and other countries who helped make this panel happen. It is the first time in history that gender identity is listed as an agenda point at the Human Rights Council and it is high time.

‘Trans* people’ is a term which we use as a placeholder for many expressions of gender identities. Trans* people are known in some places as hijra, pengkid, kathoey, fa’atama, xanith, māhū, dilbaa, travesti, transsexual, or transgender. We always have and always will be part of all of your cultures and societies in one way or another.

Many trans* people around the world experience violence and discrimination. Trans* people get beaten, raped and murdered in the streets and in our homes, by strangers and by our own families.

Our governments fail us when they persecute us for who we are, or when we are forced into sex work and underground economies for lack of proper job options. Our governments also fail us when they deny us identity papers that reflect our identities or when they demand that we be sterilized to obtain one, like my government did to me. Germany’s Constitutional Court has since outlawed the practice but the vast majority of countries still hold on to these requirements.

Our societies and families fail us when they kick us out in the streets, often early, when they deny us the education that we have a right to, when they deny us the jobs we could and should be getting.

Our healthcare systems fail us when they send us home with a broken arm or a gunshot wound because they ‘don’t treat people like that’. They also fail us when they claim that treatments we need in order to feel whole are not medically necessary – pushing many of us to quacks for black-market hormones, harmful injections of industrial-grade silicone or backyard surgery.

Human rights mechanisms fail us when they do not recognize us as people worthy of their protection and support.

Trans* people have one thing in common: we are all born human and are therefore born with human rights that this Council needs to protect.

 

 

성별 정정. 2에서 1로.

카테고리 없음 | 2013. 4. 3. 01:25
Posted by hyun현

(2012년, 그리고 2013년. 건망증같이 옛 일들을 잊어버리는 내 머리속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이 때를 기록하고 싶다.)

2012년 4월 경, 나도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SOGI)법정책 연구회'에 예규의 '외부성기' 요건 만족 없이 성별정정을 시도하는 기획신청을 제안하였다. 입법운동으로 가기 전에 법원 단위에서 완화시킬 수 있는 요건으로 제일 먼저 접근하기 쉬운 FTM성기성형 요건 철폐에 도전한다는 의미이다. 법적, 현실적, 정서적 설득의 근거가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7월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고, 예상한 것 보다 빠르게 2013년 3월 15일 1심인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허가 결정이 나왔다.

법원의 긍정적인 반응이 보였을 때부터 기대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다듬느라 정신없었다. 대법원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그 사이에 준비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을 한참 많이 남겨둔 채로 통과되어도 되는가 걱정부터 들었다. 자칫하다가는 단지 하나있는 특이한 지방법원 결정이 될 수도 있고, FTM만 해당하고 MTF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흐름으로 갈 우려도 많기 때문에 그 준비가 안되있는 상황에 우려스러운 것이다. 동시에 내 개인으로서는 기쁨을 누리지도 못 할 멍함에 정신없기도 하였다. 바로 그 '1번'을 받다니, 이제 수십년 발목에 질질 끌고 다니던 족쇄가 풀린다니, 태어나서 날아본 적 없는 새가 어느날 아침 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희열도 희열이지만 당황스러울 정도로 멍멍한 마음이 되는 그런 느낌이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앞으로의 TG운동의 흐름에서 이 사건이 어떻게 그 의미를 바래지 않고 가능한한 많은 힘을 발휘할 것인가. 이렇게 앞으로의 대응과 준비없이 한 발을 내딛어도 괜찮은 것일까. 같이 넣은 친구들의 삶과 현실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면 몸이 떨린다.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것인가, 또 한편으로 회한과 부러움과 조급함을 가지고 바라볼 다른 당사자들은. 영화 '트랜스아메리카'에서 주인공이 수술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갈 때 흘리던 눈물이 떠오르기도 했다. 형의 '다리의 족쇄'라는 이야기도 떠오르고, 교수님의 '생존'이라는 이야기도 떠오른다. 또 성별정정 후에 새로운 시작을 기뻐하면서도 서서히 허망함과 우울감에 잠길 수 밖에 없는 당사자들도 떠오른다. 옛 연인이 심문기일 당일 바로 허가의 취지를 듣고 법원 앞에 나와서 발랑발랑 뛰어다니던 모습도 생각난다. 어떤 판사들이 심문 마지막에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에 눈물 흘리던 사람들도 생각난다.

꽃다발도 받고, 사진도 찍고, 페이스북에 올려 해외의 다른 활동가들에게 소식도 전했다. 이 시대의 이 지구 위에 숨쉬고 있는 TG들에게, 아주 작은 한 발이지만 이 한 점 위에 또 하나 하나 쌓아나가면서, 이 땅의 TG들이 태어난 것을 원망하지 않고, 혹은 살아가기 위해 당연히 체념하지 않아도 될 세상에 아주 아주 약간 다가갈 길이 보여서 기쁘다.

이후 대응에 정신없어 바로 로운 주민등록번호를 받으러 가지 못했다. 꽤 오랜 시간 실감을 못하고 있다가, 딱 실감이 났던 것이 은행에 개인정보를 변경하러 가서 서류에 내 주민번호를 적을 때였다. 뒤에 7자리를 쓸 때 언제나 '2'를 조심스럽게 썻었다. 양쪽 꼭지를 '자연스럽게' 짧게 써서 언뜻 '1'로도 보일 수 있게 늘 적었기 때문에 손에 힘이 들어가곤 했는데, 그냥 시원하게 거리낌 없이 펜을 일자로 내려그으면 되는 그 감각에 깜짝 놀랄 정도였다. 여기저기 서류에 반복해서 적을 때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웃음이 삐져나왔다.

오늘은 직장 신분증(공무원증) 뒤에 주민번호 뒷자리에 붙여둔 흰색 스티커를 떼어냈다. 어찌나 시원하게 보이던지, 번호를 가리기 위해 붙여둔 것 없이 그냥 말끔한 신분증 면이 통쾌할 정도였다. 참으로 별 것 아닌 것이 참으로 별 것이란 것이 느껴졌다. 밋밋한 평면의 신분증 위에 늘 1.5cm가량의 작은 스티커가 튀어나와 있어야 했던 것(스티커를 밋밋하게 보이기 위해 꾹꾹 눌러서)이, 마치 길 위에 방지턱이 있었던 것 같다. 결코 차가 쭉 달려나갈 수 없는 길, 매끈한 유리 표면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있듯한 그 신분증.

이제 주민등록증을 지갑 안에 뒤집어서 넣지 않아도 된다. 신분증을 제시할 때 눈치를 볼 것도 한 쪽을 아무렇지 않게 가리는 행동도, 물어봤을 때 적절한 웃음으로 넘기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도 필요없어졌다는 것이다. 주민번호가 적혀 있는 서류나 종이를 뒤집어서 책상위에 올려놓을 필요도 없다.

새삼 뒤집어서 넣어야 하는 주민증과 반반한 주민증 위에 덧붙여 튀어나와 있는 종이조각이 TG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사회를 등지거나 도드라져 보이지 않게 꾹꾹 눌러담아야 하는 마음으로 신분증을 꺼내야 하는 TG들의 삶말이다.

 

 

마지막으로 보내는 길에

카테고리 없음 | 2013. 4. 3. 00:25
Posted by hyun현
(2012년, 그리고 2013년. 건망증같이 옛 일들을 잊어버리는 내 머리속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이 때를 기록하고 싶다.)

2012년 10월 31일 당신이 둥지를 틀고 바둥거리던 이 세상을 떠난 날. 11월 9일 그 육신을 한 줌 회색 재로 남기던 날. 그리고 11월 13일 긴 여정을 마치고 아버지 곁에 누운 날. 그 날 새벽녘 공항에서 하얀 천 하얀 대리석 안에 당신은 정말 조그맣게 되어 돌아왔다. 내 품 안에서 들어진 묵직한 유골함은 당신을 안고 침대에 누일 때와 같은 무게로 조심스럽고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회색 분골은 생각한 것보다 너무 따뜻해서 겨우내에도 뜨겁던 당신 몸과 같았다.   

2007년부터 4년 3개월 우리는 연인이었고, 그 전 3년여는 친구였다. 연인이라는 관계 안에서 나의 미숙함과 당신의 익숙함은 처음부터 부딪혔고, 우리의 시간을 계속 지배했었다. 결코 가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던 뜨거운 열정 안에서의 체온과 시간들과 함께, 납득할 수 없는 당신의 끊임없는 배신에 치를 떨어야 했던 시간이 공존하던 나날들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당신의 모습대신 당신의 체취와 체온만이 온 몸의 기억으로 맴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열정의 온도와 방향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서 함께한 시간 속에서 몸에 베인 습관들은, 당신의 모습이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 미래가 되어도 내 일부가 되어 남아 있을 것이다.  

당신이 안주하면서도 거부하고 싶어했던 삶의 방식을 변화하고 싶어했기에,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나도 당신도 주변 모두 축하하였다. 이제 혼자 설 수 있는 삶의 터닝포인트라는 것을 알기에, 당신이 출국할 때도, 당신과 헤어질 때도, 그리고 당신과 헤어진 후에도, 당신이 떠났음을 안 날까지도, 정말 새로운 출발점에서 미래로 향해 나가기를 기원했다. 

당신을 깊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반응이 그랬듯이, 나 또한 당신이 떠났다는 소식에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 날 밤 꿈 속에서 당신이 떠나는 길을 보았듯이, 깨고 나서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 꿈이구나라고 잠깐 안도했던 것이, 불과 몇 시간만에 꿈이 아니라 현실이란 것을 알게되었을 뿐이다. 

사람이 그리운 만큼 상대가 원하는 모습으로 분하여 사람 안에서 있기를 원했던 대신, 자신이 자신을 온전히 가져갈 수 있기를 바랬건만, 당신한테 너무 서두른 시도였다는 것에 안타깝고 슬펐다. 그 모든 모습이 당신 자신이고, 그래도 괜찮았는데. 그래서 어쩌면 추모식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이 어색했을지도 모르는 당신의 모습을 이야기 했다. 더 많은 당신의 모습을 알리고 싶어서, 영웅이기를 원했던 만큼 동시에, 영웅이 되려고 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신 모습까지 보여주고 싶었기에..

활동가로서 당신은 나에겐 어떤 면에서는 가장 많은 것을 함께 나눈 사람일지 모른다. TG운동이 나아가야 할 두 개의 놓칠 수 없는 길을 이야기했던 창동에서의 그 밤도, 지렁이라는 이름을 정하던 종로에서의 그 낮도, 투닥거리던 무수한 회의들도, 고민하던 ftm 게이운동도 tg/is 모임을 얘기하던 작년의 카톡도, 약간은 다른 방식이지만 갈구하던 활동의 형태는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기고글을 써서 보내고 피씨방을 나오던 저번 달의  어느 날 밤 찬 공기에 활동가로서 당신을 잃은 외로움에 사무치기도 했다. 문득, 어쩌면 활동가로서의 당신을 가장 간직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나일지도 모른다. 당신이라는 개인으로서, 내 옛 연인으로서 당신을 남기고 싶은만큼이나.

지금 당신이 어딘가에 있다면, 그 곳에서는 이 땅에서 당신을 붙잡고 있던 육신과 성별과 그리움에서도 자유롭고, 당신 자신에게서도 자유로워 있을 수 있기를 간절하게 염원한다.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걸어나갈 수 있는 곳에 거하고 있기를 염원하다. 당신이 가진 두 이름 안에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 이름을 오롯이 하나로 불리워도 좋은 곳에서 안돈하고 있기를 염원한다.  
 

너무 흔한 전화통화

카테고리 없음 | 2012. 7. 13. 11:30
Posted by hyun현

목소리로 남성으로 패싱되기 시작한지 3, 4년. 전화 통화 상 '본인확인'이 안되는 상황이 웃겼던 것은 처음 1년 정도이고, 이미 한계치에 달한지 오래이다. 수십번 반복된 똑같은 반응들은, 주민번호 2번이라는 현실을 후벼파고 지칠대로 지치게 한다. 한참은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싶다가, 요즘은 은행이나 광고 등 주민번호로만 나를 접하는 모든 전화들임을 알 수 있는 첫머리, 모르는 번호가 뜨는 순간부터 아스라이 공포감마저 든다.

보통 반응은 세 가지이다.

1. XX님 배우자 되시나요?

2. XX님 본인 부탁드립니다.

3. .... 예, 본인이신거죠?

본인임을 말해도 이해를 못하면, 주민번호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그래도 계속 되묻는 경우는 트랜스젠더임을 밝힌다.

그런데 얼마전에는 새로운 반응을 보았다.

 

상대" 죄송합니다. 잘못 걸었습니다.

나: 아뇨. 본인 맞습니다.

상대: 성별이 여성분이신데.. 잘못 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 아뇨. 본인 맞습니다. 어디시죠?

상대: XXXXX인데요. 아니요. 잘못 걸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 번호가 문제 있는 거고.. 본인 맞습니다!

상대: 아니요. 죄송합니다. 잘못 걸었습니다.

니: 참.. 본인 맞는데. 여튼 알겠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어찌나 하시던지.....

이게 뭥미... 

 

 

이게 뭥미...

새로운 버전이네. 내가 장난한다고 생각했나...

 

가족의 상실

카테고리 없음 | 2012. 5. 25. 21:43
Posted by hyun현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최근입니다.

정리되지 않은 멍함이 자리 잡은지 몇 달, 그 정체를 이번에 명확히 해보니. 가족의 부재입니다.

기존 혈연가족의 부모형제에게서 단절 배제되고, 애인과 헤어졌고, 생식력이 없어졌던 것이 이 3개월에 한 번에 일어났습니다.

과거의 가족, 현재의 가족, 가능성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미래의 가족이, 한 번에 소멸해버렸구나 하고 느끼고 있는 것이지요.

몇몇 활동가들을 다시 보게 되니, '지렁이'(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가 더욱 그리워지기도 했고요. 트랜스젠더와 트랜스젠더 이슈에 대한 이해가 그 어디도 그 누구도 '지렁이'만큼인 곳이 역시 없으니까요. 아직까지는.

삶의 유한함이 더 없이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요즘은 새로운 준비운동의 시기인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즐겁게 남은 생을 걸어보기 위해서요.

일단 해야 할 일부터 또 정리해봐야겠습니다.

 

 

부조리한 현실..

카테고리 없음 | 2012. 4. 23. 15:43
Posted by hyun현

부조리한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부조리 하지 않은 세상이란 유토피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조리를 외면하고 피한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부조리하지 않는 삶을 꾸릴 수 있다고 믿고 나아갈 뿐이다.

I'm a pessimist because of intelligence, but an optimist because of will. (Antonio Grams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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